청취자 여러분, 대한민국 전체 건물의 단 6%가 우리나라 전체 건물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아, 진짜 어마어마한 수치죠, 그게.
맞아요.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는 그 웅장한 오피스 빌딩, 아니면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거대한 복합 쇼핑몰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바로 이 6%에 속합니다.
네, 보통 우리는 이런 압도적인 규모의 건물을 보면, 와, 디자인 멋있다, 외관 화려하다, 이렇게 감탄만 하고 넘어가잖아요.
그렇죠. 저도 사실 매번 와 하고 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아주 기대가 되네요.
오늘 저희의 심층 탐구에서는 이 6%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왜 국가적인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는지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물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짚어볼 수 있겠네요.
네, 맞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침반으로 삼을 자료는 건축공간연구원, 즉 AURI에서 발행한 보고서입니다.
아, 그 <건축물 유지관리산업 진흥을 위한 제도개선 연구>, 맞죠?
네, 정확합니다. 이 보고서를 통해서 건축의 패러다임이 단순히 짓는 것에서 가꾸고 관리하는 것으로 이제 어떻게 넘어가고 있는지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실 그동안 건축이라고 하면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촥 집중됐잖아요.
그렇죠. 신축 아파트, 신축 빌딩, 다들 새로 짓는 것에만 열광하니까요.
하지만 건물이 완공되는 순간, 신축이라는 화려한 무대는 막을 내리고 건물은 기나긴 생존의 여정에 들어가는 거거든요.
아, 기나긴 생존의 여정. 표현이 확 와 닿네요. 사실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예전처럼 도시 곳곳에서 막 새로운 건물이 쑥쑥 올라가는 풍경은 많이 줄어들었어요.
네, 아주 극적인 변화의 한가운데 우리가 서 있는 거죠.
아무래도 인구 구조의 변화 때문이겠죠.
맞습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전체 인구가 감소하니까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간에 대한 수요, 그러니까 신축 수요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어요.
집을 살 사람도 건물을 쓸 사람도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거대한 축이 있습니다. 바로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 동안 폭발적으로 지어졌던 수많은 건축물들이죠.
그 시절에 진짜 엄청나게 지었잖아요.
네, 이 건물들이 이제 사람으로 치면 중장년층을 훌쩍 넘어서 노년층에 접어들며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는 점. 이게 진짜의 핵심입니다.
건물이 늙어 간다라. 결국 새로 짓는 파이는 점점 줄어들고 이미 지어진 낡은 건물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거네요.
정확합니다. 아주 중요한 교차점이죠.
그런데 AURI 보고서를 보니까 현재 우리나라의 법적 제도는 이런 시대적 변화를 전혀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하더라고요.
네, 뼈아픈 현실이죠.
주로 건물이 당장 무너질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 안전 점검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건데요. 잠깐만요. 점검을 하는 게 관리를 하는 것 아닌가요? 둘의 차이가 정확히 뭔가요?
아, 그게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제가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네, 좋습니다.
지금의 제도는 사람이 평소에 꾸준히 운동하고 좋은 식습관 유지하는 일상적인 건강관리는 전혀 안 하는 거랑 같아요.
아, 평소에는 완전 방치하다가요?
네, 그러다가 1년에 딱 한 번 병원에 가서 당장 수술해야 할 큰 병이 있나 없나 그것만 확인하는 건강검진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와, 진짜 확 와닿는 비유네요. 그러니까 1년에 한 번 엑스레이 찍는다고 평소 체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건물의 수명을 능동적으로 늘리고 자산 가치를 향상시키는 포괄적인 유지관리의 개념이 현재 제도에는 사실상 텅 비어 있는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렇다면 왜 우리 정책은 여전히 이런 건강검진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던 걸까요?
이게 국가 정책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과거 눈부신 경제성장기에는 일단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무조건 빨리 많이 지어야 했던 시절이었죠.
맞아요. 국가적 최우선 과제가 짓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어놓은 건물이 치명적인 붕괴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을 까는 데 급급했습니다.
아, 그래서 규제랑 점검 위주로 제도가 발달해 온 거군요.
네, 하지만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이제는 인프라가 포화 상태이고 단지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막는 소극적인 방어를 넘어서야 합니다.
이제는 공간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죠. 건물의 생애 주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의 시선이 이동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거죠.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면 산업의 규모도 그에 맞춰서 엄청 커지고 있겠네요.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있죠.
그런데 솔직히 청취자 입장에서는 약간 의문이 들 수도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요?
건물 관리라고 하면 보통 청소 용역업체 부르고 엘리베이터 고장 나면 수리기사님 부르고 그런 일상적인 작업들 아닌가? 이게 그렇게 거시적인 국가 정책까지 고민해야 할 거대한 산업인가 하는 생각 말이죠.
아, 일상적인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AURI 보고서가 제시한 통계를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는 거거든요.
아까 오프닝에서 저희가 잠깐 언급했던 그 통계 말인가요?
네, 그걸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보죠. 우리나라 전체 건축물 중에서 연면적 3000제곱미터 이상의 대형 건축물은 개수로는 단 6.14%에 불과합니다.
네, 아까 말씀하신 그 6%요.
그런데 면적을 기준으로 합산하면 이 소수의 건물이 전체 건물 면적의 무려 57.3%를 차지합니다.
다시 들어도 진짜 놀랍네요. 개수로는 고작 6%인데 공간의 크기로 따지면 절반을 훌쩍 넘는다고요?
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국가가 이 거대한 유지관리 제도를 설계할 때 동네의 작은 상가나 단독주택까지 일일이 똑같은 잣대로 규제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아, 현실적으로 너무 비효율적이겠네요.
그렇죠. 대신 국가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소수의 대형 건물들에 집중해서 제대로 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거시적인 파급력이 다르니까요. 게다가 요즘 지어지는 대형 건물들은 예전 건물들이랑 아예 차원이 다르잖아요.
완전히 다르죠. 제가 최근에 본 기사들만 떠올려봐도 미래의 대형 건물은 단순히 철근과 콘크리트를 쌓아 올린 공간이 아니더라고요.
네, 어떤 기사를 보셨나요?
막 옥상에는 도심항공교통, 그러니까 에어택시가 내릴 수 있는 버티포트가 설치되고요. 건물 내부에는 배달 로봇이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간을 이동한대요.
맞아요. 지하에는 거대한 전기차 충전 설비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죠.
그러니까 이건 그냥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엄청나게 거대한 IT 기기나 다름없어 보이거든요. AURI 보고서는 이런 진화된 형태를 스마트 플러스 건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스마트 플러스 건축이요? 이름부터 뭔가 첨단 느낌이 나네요.
여기서부터 기존의 상식과 완전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단순히 빗자루 들고 청소하거나 형광등 갈아 끼우던 시대의 관리 방식으로는 이 거대한 IT 기기를 절대 감당할 수 없거든요.
하긴 로봇 엘리베이터를 빗자루로 관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건물의 뼈대부터 혈관까지 수많은 센서와 모니터링 기술이 촘촘하게 결합 되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건 결국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건물 전체 시스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겠죠?
맞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최근에 사회적으로 엄청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를 생각해 보시죠.
그거 진짜 심각하더라고요. 피해도 엄청 크고요.
과거에는 불이 나면 단순히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고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 건축물에서는 화재 센서가 전기차 충전 시스템의 전력을 즉각 차단해야 하거든요.
네. 전기가 계속 공급되면 더 위험하니까요.
동시에 환기 시스템을 역가동해서 유독가스를 빼내고 아까 말씀하신 로봇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멈춰 세우고 대피로를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이 통합적으로 제어되어야 합니다.
와, 듣기만 해도 엄청 복잡한데요. 모든 시스템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거네요.
이런 첨단 복합 재난에 대응하려면 고도화된 기술력과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을 다루는 전문 인력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한 관리직이 아니라 진짜 첨단 기술 전문가여야겠네요.
네. 하나의 거대한 첨단 기술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죠.
듣고 보니 완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건물이 이렇게까지 고도화된 기술의 집약체로 변하고 있다면, 당연히 이걸 관리하는 시스템이나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국가적 뒷받침이 탄탄해야 할 텐데요.
당연한 수순이죠.
그런데 아까 현재 제도는 여전히 건강검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이 거대한 산업을 받쳐줄 우리나라의 법이나 제도는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 건가요?
그 부분을 파고들면 진짜 한숨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설마 우리가 흔히 아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님 같은 분들이 이런 복잡한 첨단 건물들도 다 총괄하시는 건 아니죠?
여기가 바로 현장의 가장 큰 모순이자 보고서가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는 지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건축물 유지관리산업 현주소는 명확한 법적 테두리나 기준이 아예 없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네, 법적 기준이 없다고요? 이렇게 거대한 건물들인데.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한국표준산업분류라는 국가의 공식적인 산업분류 체계가 있거든요.
네, 그 통계청에서 관리하는 그거 말씀이시죠?
맞아요. 그런데 그 체계 안에 건축물 유지관리업이라는 독자적인 영역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국가가 정한 산업분류에 아예 이름조차 없다고요?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 건가요?
쉽게 말해서 정부의 공식 엑셀표에 이 직업군을 위한 행자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 빈칸조차 없다는 거군요.
네, 그러다 보니 이 산업과 관련된 업무들이 건설업, 부동산업, 서비스업 등 수많은 다른 영역으로 산산조각 나서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와, 뿔뿔이 흩어져 있네요. 분류표에 없으니 당연히 통계도 제대로 잡힐 리가 없겠어요.
정확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이 산업의 시장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종사하는 전문 인력이 몇 명인지, 기본적인 실태조차 파악을 못하고 있어요.
기초적인 데이터가 아예 없는 거네요?
네, 기초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이 산업을 키우기 위한 국가 예산을 편성하고, 세제 혜택을 주고, 대학에 관련 학과를 만들겠습니까? 거시적인 정책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죠.
이거 비유를 하자면요. 엄청나게 거대한 첨단병원을 지어놓고 운영을 하는데, 의사, 청소팀, IT 전산팀이 전부 서로 다른 소속이라 환자 기록조차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네요.
와, 아주 적절한 비유네요. 딱 그런 상황입니다.
건물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지 못하고 각자 찢어져서 관리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당장 건물을 이용하는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의 안전에도 구멍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 점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매일 타고 오르내리는 대형 빌딩의 엘리베이터나 그 깊고 복잡한 지하주차장이 파편화된 기준으로 관리되고 있다면 진짜 무서운데요.
현재 주택관리사처럼 아파트 같은 일부 주거용 건물에 대해서는 자격 제도가 마련되어 있긴 합니다.
아파트 관리소장님들은 자격증이 있으시잖아요.
네, 하지만 그 외에 면적이 수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복합상업시설이나 거대한 오피스 빌딩, 즉 앞서 말씀드린 그런 첨단 대형 건축물들의 유지관리를 총괄하는 국가공인전문자격제도가 없어요.
네, 국가공인자격증이 없다고요? 그럼, 그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들은 대체 누가 총괄 관리하는 거죠?
제도의 공백이 있으니까 그 빈자리를 우후죽순 생겨난 민간자격증들이 채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 민간자격증이요? 근데 민간자격증은 질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요?
그게 핵심 문제입니다. 국가 차원에 표준화된 교육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의 전문성을 일정하게 담보할 수가 없어요.
제도의 부재가 산업의 파편화를 부르고 결국 전문성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거군요.
네, 그게 결국 그 건물을 매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편익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구조적인 악순환이 되는 겁니다.
아, 진짜 심각하네요. 건물이 아무리 스마트해져도 그것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할 사람과 제도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진짜 모래 위에 지은성과 다를 바 없겠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구조적으로 꼬여있었군요. 단순히 건물이 늙어가는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미래형 스마트 건물을 감당할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법과 제도가 아예 세팅조차 안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요.
네, 하드웨어는 첨단인데 소프트웨어는 아직 윈도우 95를 쓰고 있는 셈이죠.
자, 문제의 윤곽이 아주 뚜렷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AURI 연구진은 이 거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거시적인 청사진을 제안하고 있나요?
AURI 보고서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거시적인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우선 정책의 타겟을 아주 뾰족하게 다듬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전부 다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네, 모든 건축물을 무리하게 통제하려는 시도 대신에 파급력이 압도적으로 큰 연면적 3천 제곱미터 이상의 다중이용 건축물과 집합건축물로 대상을 압축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거네요.
그리고 이 핵심 대상들을 어떻게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여기에 대해 두 가지 굵직한 법안 대안을 내놓았어요.
타겟을 좁혀서 실효성을 높이는 전략이군요. 그렇다면 그 두 가지 대안, 구체적으로 어떤 길들입니까?
첫 번째 길은 기존에 없던 건축물 유지관리 산업진흥법이라는 법률을 완전히 새롭게 제정하는 겁니다.
진흥법을 아예 새로 만든다고요?
네, 쉽게 말해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판을 짜는 대수술이죠.
완전 근본적인 해결책이네요.
이 방식은 국가가 건축물 유지관리를 미래의 핵심 중점 산업으로 선포하고, 전폭적인 산업진흥정책과 예산 지원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산업을 뼈대부터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길이네요. 이거 좋게 들리는데 혹시 단점도 있습니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죠. 바로 시간입니다.
아, 법 새로 만들려면 오래 걸리잖아요. 국회도 통과해야 하고.
맞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법을 제정하려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율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거든요. 그래서 실제 현장에 안착하기까지 기나긴 세월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동안에도 건물들은 계속 늙어가고 첨단 기술은 계속 도입될 텐데 말이죠. 시간이 생명인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럼 두 번째 길은 뭔가요?
두 번째 길은 현재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건축물관리법이라는 틀을 활용해서 관련 내용을 개정하는 방식입니다.
아, 기존에 있는 법을 고쳐서 쓴다는 거네요?
네. 기존의 뼈대에 살을 붙이는 응급처치 겸 체질 개선이라고 볼 수 있죠. 이 방식의 최대 장점은 신속성입니다.
이미 있는 법이니까 빠르게 적용할 수 있겠네요.
이미 굴러가고 있는 법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거니까요. 그리고 건물의 설계부터 시공, 관리, 철거까지 이어지는 생애주기 전체를 하나의 법 안에서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논리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현실적이고 아주 빠른 대안이네요. 하지만 이거 역시 한계가 명확할 것 같은데요?
네. 기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다 보니까 첫 번째의 대안처럼 독립적인 산업으로서 전폭적인 진훙정책이나 대규모 지원책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그 법적 그릇이 다소 작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규제 중심의 법체계 안에서 산업을 폭발적으로 키워내기는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겠죠?
맞습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하나는 시간은 좀 오래 걸리지만 강력한 대수술이고 다른 하나는 빠르게 적용할 수는 있지만 폭발적인 산업 확산에는 한계가 있는 체질 개선이군요.
각각의 장단점이 아주 팽팽하게 맞서고 있네요.
네.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죠.
그렇다면 청취자 입장에서 우리가 이 두 가지의 대안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이 보고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사실 어느 법을 선택하느냐 하는 그런 표면적인 논쟁을 넘어서는 것에 있습니다.
표면적인 논쟁을 넘어선다? 그게 무슨 의미죠?
어떤 길을 택하든 우리가 향해 할 최종 목적지는 명확하다는 뜻입니다. 바로 건물이 지어진 후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철거될 때까지 수십 년간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하는 끊김없는 생애주기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록과 관리를 하나로 쫙 묶어서 시스템화한다는 거군요.
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잖아요.
결국 전문가가 필요하죠.
그래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민간 자격 제도들을 정비해서 국가가 공인하는 가칭 ‘건축물관리사’ 같은 최고 수준의 전문가 양성 체계를 시급히 만들어야 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그 제도의 빈칸을 채우는 거네요.
더 나아가서 전문가들과 기업들을 하나로 묶어 산업의 구심점 역할을 할 협회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제도의 완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보고서는 강하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시점이 건축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변곡점인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예전에는 건물을 청소하고 고치는 일들을 그저 피할 수 없는 비용 지출이나 약간 귀찮은 의무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아요.
정확합니다. 바로 그 인식의 전환이 이 모든 논의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인식이 바뀌어야 제도가 바뀌니까요.
고도화된 유지관리는 단순한 비용이 아닙니다. 첨단 기술과 전문가의 손길이 결합된 관리는 건물의 물리적인 수명을 수십 년 더 연장하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해서 탄소 배출도 줄여주거든요.
환경에도 당연히 좋겠네요.
궁극적으로 공간이 창출하는 사회적/경제적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가장 적극적인 투자 행위로 봐야 합니다. 유지관리 산업이 건설업의 그늘에 가려진 하청 업무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거대한 국가표준산업으로 당당하게 대우받고 도약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이 대화를 깊게 나누고 나니까 매일 무심코 스쳐 지나가던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건물들이 새롭게 보이실 겁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오늘 출퇴근길에 혹은 지금 머물고 계신 그 거대한 건물을 찬찬히 다시 한번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천장 틈새로 뻗어있는 환기구부터 보이지 않는 지하 깊은 곳에 거대한 전력 통제 시스템까지 말이죠.
네, 정말 수많은 기술이 숨어 있으니까요.
이 모든 것들이 파편화되고 임시방편적인 관리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제도 안에서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에 의해 스마트하게 관리되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네, 곧 그런 시대가 오겠죠.
우리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주던 보이지 않는 거이니 이제 가장 최첨단의 기술과 제도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새롭게 태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진정한 가치는 그 건물을 멋지게 짓고 테이프를 끊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럼, 언제 완성되는 거죠?
수십 년 동안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어떻게 세심하게 가꾸어지느냐에 따라 비로소 그 가치가 증명되는 것이죠.
맞습니다. 자, 오늘의 심층 탐구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이 스스로 고민해 볼만한 흥미로우면서도 조금은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려고 합니다.
오, 어떤 질문인가요?
앞서 미래의 건물은 첨단 IT 기술과 결합된 거대한 스마트 기기가 될 것이라고 했잖아요.
네, 그렇죠.
마냥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과 로봇 시스템이 사람의 개입 없이 건물의 온도, 보안, 재난 통제까지 완벽하게 스스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시대가 온다고 가정해 보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입니다.
그런데 그 완벽해 보이던 AI 시스템에 알 수 없는 데이터 오류가 생겨서 건물 전체가 마비되거나 큰 인명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막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와, 이거 진짜 딜레마네요.
그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에게 책임이 있을까요? 아니면 이 AI 시스템의 안전성을 최종적으로 세팅하고 인증했던 그 유지관리 전문가에게 있을까요?
정말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 속도는 항상 제도의 발전 속도를 앞질러 갔잖아요.
네, 그래, 늘 제도가 뒤따라 갔죠.
오늘 우리가 치열하게 논의했던 산업의 제도와 청사진은 단지 현재 건물이 늙어가는 문제를 임시로 땜질하는 게 아닙니다.
더 큰 미래를 대비하는 거군요.
맞습니다. 인공지능과 스마트시티가 일상화될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관리 책임, 그리고 구조적 딜레마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단단한 주춧돌을 놓는 작업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네, 화려하게 짓는 시대를 넘어서 묵묵히 가꾸는 시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건축기술의 눈부신 진화가 가져올 미래 공간의 풍경,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책임의 무게에 대해 한번 깊게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
저도 오늘 대화 정말 즐거웠습니다.
여러분을 감싸고 있는 일상의 공간이 내일은 조금 더 안전하고 똑똑해지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의 심층 탐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